혹시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모현엔 ‘정도전’과 ‘육룡이나르샤’로 더욱 친근해진 포은 정몽주 외에도 훌륭한 역사인물이 다수 잠들어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최근 용인시로부터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분이 있으니, 바로 이사주당(1739-1821)입니다.

이사주당은 세계 최초의 태교 관련 저술서로 평가받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남긴 조선시대 여성학자로, 실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유희(1773-1837)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에 비해 역사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들 모자는 최근에 와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는데요. 태교의 중요성이 높아진 요즘, 이사주당이 저술한 ‘태교신기’의 가치가 재해석 됐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앞서갔지만 역사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그녀와 그녀가 쓴 태교지침서.

이 점을 안타깝게 여긴 일부 시민들은 이사주당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활동을 이어갔고, 용인시는 지난해 ‘태교도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많이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 다행인데요. 용인시는 속죄라도 하듯 ‘세계최초 태교도시’를 표방하며 관련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어제였죠. 북한의 ‘수소탄’ 실험으로 떠들썩했던 6일 오전, 용인시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올해 신규 향토문화재 심의 결과 ‘이사주당·유한규묘’가 향토유적으로 지정돼 고시됐다는 겁니다. 모현면 왕산리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뒷산인 정광산 서부쪽 자락에 위치한 이 분묘는 이사주당과 그의 남편 유한규가 합장된 묘소입니다.

사실 이사주당 묘역은 ‘태교숲길’이라 불리는 임도가 조성되기 전까진 위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외지고 험준한 곳에 자리해 있었는데요. 지금은 접근성이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그녀가 지닌 역사적 가치에 비하면 매우 초라하고 소박한 모습입니다.

일반인 묘소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죠?

이번 향토유적 지정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관련 조례에 따라 묘역을 관리하고 보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인데요. 앞으로 이사주당 묘역과 진입로 곳곳에는 문화재임을 알리는 갈색 안내판과 이정표가 설치될 예정입니다.

용인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중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이사주당·유한규 묘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할 계획”이라며 “향토유적 지정은 태교도시 용인에 있어 상징적인 효과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용인시는 이사주당의 아들 유희 묘소에 대해서도 추후 향토유적 지정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하네요.

한편 이사주당은 22살 연상 유한규(1718-1783)와 혼인 후 용인시 모현면에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1784년(정조 8) 남편이 먼저 죽고, 이사주당은 1821년(순조 21) 모현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해집니다. ‘태교신기’를 저술한 곳은 지금의 매산리 지역이라는군요.

이사주당과 그의 아들 유희. 이들의 생애와 ‘태교신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본명은 박재영. 미디어모현 대표기자입니다. 용인시 모현읍 출신으로 크레이티브한 작업을 좋아합니다. 기획하고 취재하며 (촬영하고) 글 쓰는 일을 10년간 해왔습니다. 미모를 통해 지역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길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