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일본 놈들이 수도를 여기로 옮기려 했었다고.”

모현에 자리한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의 옛 지명 ‘관청마을’의 또 다른 과거를 알아보기 위해 찾은 용인문화원 부설 용인문화연구소. 이곳 3층에서 만난 용인문화원 정양화 부원장은 관청마을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정 부원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걸 만든 일제가 조선인 상당수를 만주로 내쫓고 일본인을 조선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다”면서 “일왕이 사는 황거를 우리나라 땅으로 옮기는 등 수도 이전을 추진했다”고 했습니다.

※.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내세운 정치 슬로건.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결성해 아시아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출처=두산백과]

그런데 놀랍게도 일제가 수도를 이전하려고 했던 곳은 다름 아닌 옛 관청마을, 지금의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자리라는 겁니다.

모현면 출신으로 향토사학자이기도 한 정양화 부원장은 “과거 건설부 직원 가운데 일제가 수도 이전 목적으로 측량한 도면을 봤다는 증언이 있다”며 “(외대 부지가)그만큼 명당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수도로 사용할 만한 공간이 나오는지는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쇼킹한 내용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로부터 며칠 뒤, 정 부원장의 말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2005년 ‘희귀자료 및 진서 해설’이라는 제목의 자료 해설서를 냈습니다.

이 해설서는 경원대(現 가천대) 총장을 지낸 김의원(85) 박사가 직접 수집하고 국토연구원에 기증한 120여권의 희귀자료를 한글로 정리해놓은 것인데요. ‘국토종합개발의 역사’라는 책을 다룬 14장에 정양화 부원장이 말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바로 살펴볼까요.

1961년 7월 일본의 국토계획협회가 발행한 이 책은 일제강점기 비밀리에 추진된 국토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해설서에 따르면 1940년 8월 일제가 독일의 히틀러를 본떠 국토계획을 하기로 했고, 1944년에 이르러 ‘중앙계획 소안요강안’이란 비밀 국토계획을 작성했는데 해당 구역은 일본, 조선, 만주까지 포함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특히 이 계획에서 수도 이전 후보지로 꼽은 3곳 가운데 하나가 서울 근교인 ‘경성 교외’로 기록돼 있다는데요.(나머지 2곳은 일본 내) 이후 김의원 박사가 알아본 결과 이곳은 모현의 관청마을,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 일대였다고 합니다.

김 박사는 2005년 당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중에 일본 전직 관리 등과 면담을 통해 수도 이전 후보지였던 경성 교외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당시)가 있는 계곡 일대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해설서는 또 당시 일제가 측량까지 마친 상태로, 1960년대 초 건설부 도로과장이었던 이모씨가 해방 직후 도로과 서류함에서 문제의 측량도면을 봤다고 증언했다는 내용까지 수록하고 있어 신빙성을 더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일제는 왜 우리나라의 넓은 국토 중에서 굳이 용인시 모현면의 외대 부지를 택했던 걸까요.

1984년 5월 25일자 매일경제 지면에는 당시 국토개발연구원장이었던 김의원 박사의 칼럼이 실려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일제의 유력한 수도 이전 후보지인 ‘경성 교외’가 정확히 어떤 지역인지 몰랐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칼럼에서 김 박사는 일제가 수도 이전 계획을 세우며 후보지 선정기준으로 다음 6가지 사항을 꼽았다고 했습니다.

1. 전국토의 중심적 위치.
2. 지진과 풍수해 등의 천재지변이 적은 곳.
3. 사계절이 뚜렷하며 겨울에 추위가 심하지 않고 여름에 크게 덥지 않은 지역.
4. 평탄한 지형에 땅이 높고 경치가 아름다운 지역.
5. 용수, 전력, 식량 등 물자가 풍부한 지역.
6. 교통이 편리하고 지역의 문화수준이 높으며 기성도시와 적당한 거리에 있는 곳.

이렇게 보니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죠?

다만, 국토의 중심적 위치라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데요. 사실 일제의 시각에서 보면 모현이 국토의 중앙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정양화 부원장은 “당시 일본에서 한반도, 만주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정중앙이 모현의 외대 땅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일제가 새로 세우려던 수도에는 왕궁과 정부기관이 이전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만일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다면 현재 모현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감히 상상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김의원 박사가 지난 2009년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보면 대략 답이 나옵니다.

“비밀 계획을 보면 일본인 800만명과 조선인 200만명을 만주로 이주시키고, 일본인 200만명을 한반도로 이주시킨다는 내용의 인구 배정계획이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서는 일본인을 만주 대신 조선으로 보내고, 훨씬 많은 조선인을 만주로 내보냈을 겁니다. 결국 한반도 개발은 다 자기들이 와서 살기 위해 했던 것이라는 게 내 결론입니다.”